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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 북극권 근처에 위치한 아이슬란드는 103,000 평방킬로미터의 면적에 33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인구의 섬나라로, 그린란드를 제외하면 유럽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국가이다. 국토 대부분이 고원, 높은 산봉우리, 비옥한 저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80% 정도는 영구적으로 거주하는 사람이 없는 무인지대다. 13%는 만년설이나 빙하에 덮여 있고, 인구 대부분은 7% 정도의 비옥한 저지대에 밀집해 있다. 가까운 이웃으로는 그린란드, 페로 제도, 스코틀랜드가 있다. 수도 레이캬비크는 세계 최북단의 수도로, 총 12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극단적인 곳이다. 빙하와 활화산이 공존하기에 때때로 ‘얼음과 불의 나라’라고 불리고, 해가 거의 지지 않는 여름과 해가 거의 뜨지 않는 겨울이 앞다투어 찾아오기에 ‘빛과 어둠의 나라’라 불린다. 또한 유럽에서 가장 늦게 사람이 정착한 지역이기도 하다.
비록 북극권에 맞닿아 있지만,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기후는 생각보다 온난한 편이다.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백야 현상이 심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해가 거의 지지 않고, 12월에는 해가 뜨는 시간이 4시간에 불과하다. 아이슬란드는 총 일곱 개의 지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인구가 밀집된 수도 지역, 용암원과 폭포가 많은 지방, 피요르드가 집중된 서쪽과 동쪽 지방, 빙하로 뒤덮인 내륙지방 등이 있다.
사실상 공식언어인 아이슬란드어는 스웨덴어, 덴마크어, 노르웨이어와 마찬가지로 고대 노르드어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앞서 언급한 언어들보다 원 형태에 더 가까운 편이다. 이는 외래어보다는 고유어를 만드는 쪽을 선택하는 경향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슬란드가 다른 노르딕 국가들보다 고립 기간이 길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슬란드 학교에서는 영어와 덴마크어를 필수로 이수해야 하기 때문에, 인구 대부분은 두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이외에도 스웨덴어, 노르웨이어, 독일어, 프랑스어 화자가 많다.

역사
현대 아이슬란드인들의 조상인 노르드인들이 이주하기 전부터 아이슬란드에는
켈트족 수도승들이 정착해 살고 있었다. 이들 수도사들은 최소한 서기 874년 전까지는 아이슬란드에 남아있었고, 노르드인들이 도착하기 전에 섬을 떠났을 가능성도 제기 되었다.
가르다르 스바바르손이라는 스웨덴인 모험가가 870년경 아이슬란드 주변을 항해하여 섬이라는 것을 최초로 증명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노르웨이인들과 그 노비들이 대대적으로 이주해오기 시작해서 930년경에는 실질적인 국가의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1397년 노르웨이와 덴마크가 칼마르 동맹을 맺은 뒤 아이슬란드는 덴마크 국왕의 소유가 된다. 1662년에는 모든 권력이 코펜하겐으로 넘어가서, 아이슬란드 내에서는 그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른 경제적 타격에 더해 16, 17세기 기온이 낮아지며 식량공급마저 어렵게 되었다. 아이슬란드는 덴마크에게서 1918년 독립했지만, 공식적으로는 덴마크 본토와 함께 왕권 휘하에 있었다. 완전한 독립은 1944년 6월 17일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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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마도 <니얄의 사가>를 비롯한 10-11세기의 사가 문학일 것이다. 오랜 고립에 따른 언어적 고착으로, 현대 아이슬란드인들은 이 당시의 문학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아이슬란드는 195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인구 대비 세계 최다의 서점을 보유하는 등 문학에 대한 흥미가 높다. 이외에도 인구 대비 최다 도서 출판, 최다 외국 도서 번역 출판 등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아이슬란드 국민의 10%는 살면서 책을 최소 한 권 출판한다.
전통적인 아이슬란드 음식은 대부분 생선, 양고기, 유제품을 사용해 만든다. 허브나 양념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기후 때문에 과일이나 채소는 전통적 요리에는 거의 사용 되지 않지만, 현대 들어서는 온실의 사용으로 신선한 재료의 사용이 크게 늘었다. 유명한 아이슬란드 출신 뮤지션으로는 락밴드 시구르 로스(Sigur Rós)가 있다.
가장 유명한 아이슬란드의 문학 작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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